
저는 불교 신자는 아닌데 우연히 좋은 말이 있어서 한번 적어 봤어요.
안수정등(岸樹井藤), 달콤함에 매달린 생명의 애절한 이야기
한낮의 태양이 사막을 내리쬐던 어느 날, 낯선 여행자가 모래 바람 속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뜨겁게 달아오른 발바닥을 이끌며 한 걸음씩 옮기던 그는, 문득 뒤쪽에서 낮익은 코끼리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숨이 턱 막히는 공포가 온몸을 감싸자, 여행자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죠. 그런데 모래가 점점 뜸해지고, 그 끝에 다다른 그는 아찔한 절벽 앞에 서 있었습니다.
절벽 아래로는 맹렬한 폭풍처럼 모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더 아래에는 도사리고 있는 검은 구렁이가 절벽 가장자리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지만, 등 뒤로 쏟아지는 코끼리의 울음소리가 그의 다급함을 더했습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은, 절벽 벽면 아래로 늘어진 등나무 넝쿨 하나였습니다. 살며시 다가가 몸을 기댄 여행자는 손을 뻗어 넝쿨을 움켜쥐었습니다. 하지만 넝쿨은 한 올씩 비실비실 떨어져 나가고 있었고, 위에서는 낮과 밤을 상징하는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가며 넝쿨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떨어지리라…” 그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절벽 위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달콤함이 코끝을 스쳤습니다. 바로 자신의 얼굴 바로 앞에서 벌집 구멍 하나가 흔들리더니, 투명한 꿀방울이 뚝 떨어졌습니다. 고단했던 여행자의 정신은 그 달콤한 한 방울에 홀린 듯, 고개를 들어 꿀방울을 입에 머금고는 잠시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잊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꿀방울의 달콤함은 잠깐일 뿐, 코끼리의 울음소리는 여전했고, 넝쿨은 어느새 바닥이 보일 만큼 갉아먹혔습니다. 그는 몸이 식은땀으로 젖어드는 것을 느끼며 비로소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삶과 집착에 대한 무상함의 경고
이 이야기는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뜨거운 사막의 여행자처럼, 우리도 일상에서 수많은 위험과 불안정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순간의 쾌락과 위로, 그리고 안락에 집착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곤 합니다. 달콤한 꿀방울처럼 우리의 일상도 잠시 달콤하지만, 그것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무상(無常)’이라 일컫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며, 집착은 고통을 낳습니다. 절벽 위 매달린 여행자가 넝쿨이 끊어지는 순간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은 분명합니다. 순간의 달콤함에만 매달려 삶의 본질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무상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집착에서 벗어날 것인가라는 질문 말이죠.
오늘의 마음챙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꿀방울에 매달려 있나요? 짧은 휴식, SNS의 좋아요, 물질적 성공 등은 잠시의 위로를 줄 수 있지만, 진정한 평화는 내면의 자유에서 비롯됩니다. 무상함을 이해할 때, 우리는 집착을 내려놓고 비로소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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